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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찰+밸업 글쓰기 사례

다시 일어서는 데에도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7. 27.

장마 뒤 개울가의 풀을 보며 다시 생각한 삶과 배움

나는 거의 매일 같은 길을 걷습니다.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날, 개울가의 풀들이 거센 물살에 눌려 한쪽으로 모두 쓰러져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성하게 서 있던 풀들이었습니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는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며칠 뒤 같은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장면을 만났습니다.

쓰러져 있던 풀 가운데 많은 풀이 다시 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예전 모습과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줄기는 조금 기울어 있었고, 물살이 지나간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다시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생명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구나.”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하니 이 말도 조심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풀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뿌리가 뽑히거나 줄기와 생장점이 크게 손상되면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뿌리와 줄기가 살아 있고 주변 환경이 다시 안정되면, 일부 식물은 빛과 중력에 반응하면서 다시 위쪽으로 자랍니다.

중요한 것은 풀들이 폭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폭우를 겪은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사람에게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달라진 상태에서 다시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일까?

나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도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겪으면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잊어버려.”

“다시 시작하면 돼.”

“긍정적으로 생각해.”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에서 상처를 입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도 얼마 전 하루에 두 번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사고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같은 날 두 번이나 사고가 나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그 경험을 글로 쓰면서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글을 한 편 썼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인 처리도 남아 있었고 마음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일어난 일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를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다시 시작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70대에 AI를 배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이 생각은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AI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AI를 사용한 사람이 아닙니다.

 

70대에 들어서 새로운 기술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말이 많았습니다.

프롬프트가 무엇인지,

생성형 AI가 무엇인지,

어떻게 질문해야 좋은 답을 얻는지 하나씩 배워야 했습니다.

 

젊은 사람처럼 빨리 익히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버튼 하나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맬 때도 있고,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답답해질 수 있습니다.

“왜 이것도 빨리 못하지?”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젊은 사람의 속도로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내 속도로 배우면 됩니다.

모르면 다시 묻고,

안 되면 다시 해 보고,

오늘 하나 알았으면 내일 하나 더 알면 됩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과 AI를 활용해 글도 쓰고 전자책도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만두지 않고 다시 해 본 시간이 쌓인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는 데에는 의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일을 정신력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의지만 강하면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병이 있다면 의료적인 도움도 필요하고,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문제라면 제도와 환경의 지원도 중요합니다.

개울가의 풀도 혼자 의지를 내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물이 빠지고,

햇빛이 다시 비치고,

땅이 안정되고,

뿌리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관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무조건

“힘내라.”

라고 말하는 것보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라고 묻는 일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러져 있는 시간도 삶의 일부입니다

나는 개울가의 풀을 보면서 또 한 가지 생각했습니다.

풀은 쓰러져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과가 없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돌보고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찾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멈춘 시간을 무조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밖으로 보이는 속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가 아닙니다

AI 시대에는 변화가 매우 빠릅니다.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고, 어제 배운 것이 오늘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빨리 따라가는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70대를 살아가면서 다른 질문을 합니다.

“얼마나 빨리 따라갈 것인가?”보다 “계속 배울 수 있는가?”

 

나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젊은 사람과 같은 속도를 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경험과 새롭게 배우는 기술이 만나면 젊었을 때에는 만들 수 없었던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듦을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는 이유로 삼고 싶지 않습니다.

느리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다시 배우면 됩니다.

잘못하면 다시 해 보면 됩니다.

장마 뒤의 풀을 다시 봅니다

며칠 뒤 다시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풀들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폭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어난 일을 가지고도 다시 살아가는 것.

달라진 몸과 환경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는 것.

자기 속도로 다시 시작하는 것.

 

나는 요즘 그것을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AI를 배우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빨리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젊은 사람과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배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개울가의 풀들이 내게 답을 준 것은 아닙니다.

풀은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모습을 바라본 내가 내 삶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 뒤에도 자기에게 맞는 시간과 방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직 그렇게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장마 뒤 개울가 일상 산책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