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찰+밸업 글쓰기 사례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가 지나온 길을 보아야 한다.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8. 2.

붉은 노을 앞에서 떠올린 사촌 형의 삶

나는 하루 중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산책도 이 무렵에 자주 합니다.

 

어느 날 개울가를 걷다가 산등성이에 걸린 붉은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평소에도 많이 보던 노을이었는데 그날은 오래전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촌 형의 이야기였습니다.

해 질 무렵이면 생각나는 사람

사촌 형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도 재가하면서 부모의 보호를 받기 어려워졌고, 한동안 종가인 큰집에서 지내며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바골’이라고 부르던 골짜기에서 땔감을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형이 골짜기에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형의 이름을 빗대어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바골 데레끼 종쳐라. 해 넘어간다. 종쳐라.”

어른들에게는 별뜻 없는 농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다른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어린아이에게 그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그때 우리는 그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나는 노을을 볼 때면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립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

불행해 보이는 사람.

그런데 오래 살아오면서 그런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사촌 형의 어린 시절 한 장면만 보았다면 형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큰집의 일을 돕던 외로운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형의 삶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고아원에서 성장했고, 훗날 목회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랜 목회 생활을 마친 뒤 지금은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과 노년의 모습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분명해집니다.

 

사람의 한 시점은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닙니다.

그때 보이는 모습은 한 생애 가운데 한 장면일 뿐입니다.

붉은 노을은 태양이 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붉은 해를 보면서 한 가지 자연현상도 생각했습니다.

해 질 무렵 태양이 붉게 보이는 것은 태양 자체가 갑자기 붉게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태양빛이 낮보다 더 긴 대기층을 통과하면서 파장이 짧은 빛은 많이 산란되고, 상대적으로 붉은 계열의 빛이 우리 눈에 더 잘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연과학적 현상입니다.

이 자연현상이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법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람을 보는 나의 태도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본질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보지만 그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이 통과해 온 긴 시간은 잘 보지 못합니다.

결과는 보지만 경로는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 사람의 오늘에는 어제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투가 유난히 거칠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습만 보면 성격이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상처를 경험했는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잃었는지,

어떤 실패와 성공을 지나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사촌 형에게 던졌던 어린 시절의 농담도 그렇습니다.

말을 던진 사람은 금방 잊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단순히 지금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지나온 길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사람책을 만나면서 더 분명해진 생각

나는 사람책, 이른바 휴먼라이브러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한 권의 책처럼 만나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방식입니다.

 

직업이나 경력 몇 줄로 사람을 소개하는 것과 실제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았는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듣다 보면 처음에 가지고 있던 인상이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느낍니다.

사람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제목보다 훨씬 많은 본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표지만 보고 한 권의 책을 판단하듯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몇 장을 더 읽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보이기도 합니다.

고난이 사람을 자동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촌 형의 삶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는 조심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훗날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해서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라고 쉽게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고통을 겪었다고 누구나 같은 결과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보다 그 경험을 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다른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 장면은 결말이 아닙니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가면 우리는 해가 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태양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눈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고,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아침이 시작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사촌 형의 어린 시절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만 보고 형의 삶을 판단했다면 얼마나 틀렸을까.

외롭고 힘든 어린 시절은 분명 형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의 삶 전체도 아니고 마지막 문장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삶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저 사람의 삶은 결국 저렇게 될 것이다.”

라고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의 모습은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아닙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

삼찰밸업을 생각하면서 나는 사람도 ‘읽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분석하거나 평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먼저 실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지고 있던 판단을 돌아보고,

그 사람이 지나온 삶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묻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직업인가.

학력인가.

현재의 성공과 실패인가.

한 번의 실수인가.

몇 마디 말인가.

아니면 그가 살아온 삶 전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나 역시 내 삶의 한 번의 실패나 어느 시기의 모습만으로 나를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한 장면보다 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붉은 노을 앞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오늘도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갑니다.

붉은 노을을 보면 나는 어린 시절 골짜기에서 땔감을 하던 사촌 형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사람을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자.

그 사람에게는 내가 보지 못한 어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현재의 한 장면만 보는 일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길을 지나왔으며, 아직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붉은 노을은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한 사람의 오늘에는 그가 걸어온 긴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볼 때 그 시간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습니다.

(일상의 개울가 산책로에서 이틀에 걸쳐 찍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