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찰+밸업 글쓰기 원리

하나의 경험을 한 편의 글로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8. 5.

존 듀이의 ‘하나의 경험’에서 읽는 삼찰+밸업글쓰기의 원리

글쓰기가 곧바로 예술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의 한 영역으로서의 글쓰기는 삶의 경험을 의미 있게 직조하고 주변 사람들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존 듀이의 ‘하나의 경험’을 유비로 삼아 삼찰+밸업글쓰기의 글감과 과정을 이야기하려한다.

들어가며

이재언 옮긴이는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소개하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하나의 절대 기준과 고정된 본질을 의심하는 사상 흐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듀이를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과 삶, 고급문화와 일상, 이론과 현실을 지나치게 나누어 온 사고를 다시 묻는 시대에, 듀이의 예술철학이 왜 다시 중요해졌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듀이는 예술을 박물관 안의 특별한 물건으로만 보지 않았다. 예술이란 본래 살아 있는 인간이 환경과 만나고,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마침내 하나의 의미 있는 완성에 이르는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이라고 불렀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늘 일어나지만 모든 경험이 하나의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험은 산만하게 흩어지고 중단된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발단'을 가지고 '전개'되며, 마침내 단순한 정지가 아닌 '완성'에 이른다. 이와같이 듀이는 내적 통일성과 완결성을 지닌 경험을 중요하게 보았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글쓰기가 곧바로 예술은 아니다. 모든 글이 문학 작품도 아니며, 모든 기록이 예술적 표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보고서, 공지문, 정보글, 메모, AI가 만든 초안도 모두 글쓰기이지만 그 자체로 예술은 아니다.

그림이 보여 주듯 음악·미술·건축·무용·연극·문학은 예술의 여러 갈래다. 글쓰기는 문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문학적 예술과 동일한 말은 아니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과 의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며, 글쓰기는 그 문학을 포함하여 기록·전달·설득·성찰을 수행하는 더 넓은 활동이다.

그러므로 삼찰+밸업글쓰기는 글쓰기를 예술이라고 선언하는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듀이의 ‘하나의 경험’에서 유비를 얻어, 삶에서 겪은 경험을 어떻게 한 편의 의미 있는 글로 조직할 것인가를 다루는 글쓰기의 실천 원리다.

Answer Nugget

삼찰+밸업글쓰기의 핵심 글감은 단순한 사건이나 정보가 아니다. 시작과 변화과정과 완성을 지닌 ‘하나의 경험’이다.

관찰은 사실을 붙잡고, 성찰은 사실과 결과의 인과 관계를 읽으며, 통찰은 경험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발견한다. 밸업은 그 사적인 경험을 독자와 공동체를 위한 공적인 가치로 확장한다.

1. 글감은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다

“비가 왔다”는 사건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나는 걸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걷지 않았을 때 몸이 점점 굳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지속적으로 걸을 때 다리가 유연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하나의 경험이다.

듀이의 말대로 하나의 경험은 발단에서 시작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Interaction)에서 발전하고, 마침내 정지가 아닌 충만한 완성에 이른다. 글감은 바로 그 과정에서 포착할 수 있다.

어떤 경험에는 저항과 갈등이 있다. 몸이 아프고, 관계가 흔들리고, 계획이 실패하고, 오래 믿어 온 생각이나 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항과 갈등 자체가 글감의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겪었으며, 무엇을 새롭게 이해했는가이다.



삼찰+밸업글쓰기는 그 경험을 다음의 흐름으로 정리한다.

관찰(Observation) —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성찰(Reflection) — 그 일은 나와 삶에 무엇을 묻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가.
통찰(Insight) — 이 경험을 관통하는 한 문장 혹은 하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밸업(Value-Up) — 이 경험은 독자와 공동체에 어떤 가치와 실천을 건넬 수 있는가.

이제 다음 질문은 분명해진다.

> 나는 오늘 어떤 일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했으며 그 경험은 내게 무엇을 완성하게 했는가?

이 질문에서 삼찰+밸업글쓰기의 본론이 시작된다.


2. 관찰은 경험의 발단과 장면을 붙잡는 일이다

좋은 글은 거창한 주장보다 실제 장면에서 시작한다. 관찰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먼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붙잡는 일이다.

예를 들어 “노년에는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자 발목이 굳어 있었고, 잠시 망설이다가 운동화를 신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렸다”는 문장에는 한 사람의 실제 경험이 있다.

관찰은 경험의 발단을 붙잡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발단만 기록하면 일기는 될 수 있어도, 아직 한 편의 글은 되지 못한다. 그 장면이 나에게 무엇을 묻게 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3. 성찰은 행동/사건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읽는 일이다

듀이는 “행위와 그 결과는 반드시 지각 안에서 결합되어야 한다. 이 결합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걸었다. 그리고 몸이 조금 풀렸다. 여기까지는 행동과 결과다. 성찰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묻는다.

“왜 쉬는 것보다 걷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되었을까?”
“회복은 반드시 항상 멈춤으로만 오는가?”
“나이가 들수록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더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성찰은 사건을 교훈으로 성급히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내 경험에서 일어난 행동, 감정, 저항, 변화의 관계를 천천히 읽는 일이다.

듀이가 말한 하나의 경험에는 능동과 수동이 함께 있다. 내가 걸은 것은 능동적 행위다. 몸의 뻣뻣함과 피로를 느끼고, 변화에 반응한 것은 수동적 체험이다. 글이 깊어지는 지점은 내가 한 일과 내가 몸으로 겪은 일이 만나는 자리, 즉 하나의 경험이다.

4. 통찰은 흩어진 하나의 경험을 하나의 의미로 묶는 일이다

듀이는 하나의 경험이 “하나의 통일체(a whole)”라고 말한다. 여기서 통일성은 모든 경험이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여러 장면과 감정과 생각이 있어도,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성질과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에 유비하여 통찰을 말하면, 바로 그 중심을 한 문장으로 발견하는 일이다. 사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공적인 메시지이다. 공감과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걷기에 관한 경험의 통찰은 이렇게 나올 수 있다.

> 건강 회복은 쉬기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에서 다시 움직일 때 시작된다.

이 문장은 단순한 건강 정보가 아니다. 관찰한 장면과 성찰한 관계를 하나로 묶은 경험의 중심이다.

글쓰기에서 통찰이 없으면 글은 여러 정보와 사례를 모아 놓은 목록이 되기 쉽다. 반대로 통찰이 있으면 독자는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이고, 공감 포인트이다.

5. 밸업은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가치로 확장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삼찰+밸업글쓰기는 듀이의 ‘하나의 경험’을 넘어서는 고유한 단계를 갖는다.

듀이의 하나의 경험은 한 경험이 내적으로 완성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그러나 밸업은 그 경험을 “그래서 독자나 공동체에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

나의 걷기 경험은 나에게만 의미 있는 기억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확장될 때 공적인 메시지가 된다.

> 노년의 건강은 한 번의 강한 운동보다, 몸의 신호를 살피며 매일 다시 움직이는 작은 지속에서 지켜질 수 있다.

이제 글은 개인의 운동 기록을 넘어, 비슷한 몸의 변화를 겪는 독자에게 생각과 실천의 질문을 건넨다.

밸업은 훈계가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 정답처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하나의 경험에서 다른 사람도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함께 나눌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아가 공동체에 던지는 공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6. 글은 예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정직하게 직조하는 일이다

삼찰+밸업글쓰기는 모든 글을 예술로 부르지 않는다. 문학적 글쓰기는 언어의 리듬, 형식, 상상력, 표현의 깊이를 통해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글쓰기의 목적은 정보를 전달하고, 생각을 나누고, 삶의 의미를 공적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듀이의 ‘하나의 경험’은 좋은 글의 중요한 원리를 알려 준다.

좋은 글은 삶과 떨어진 문장이 아니다. 삶에서 시작한 경험이 관찰을 통해 구체화되고, 성찰을 통해 깊어지며, 통찰을 통해 하나의 의미를 얻고, 밸업을 통해 타인과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마무리

듀이는 하나의 경험이란, 그 종국(끝)이 단순한 정지(마침)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즉 '시작-전개-완성'이다. 삼찰+밸업글쓰기도 바로 그 경험을 글쓰기에서 실천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매일 많은 일을 겪는다. 그러나 모든 일이 글이 될 필요는 없다. 나를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이전과 다른 이해로 이끈 경험이라면 그것은 이미 글감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제 글을 쓰기 전에 이렇게 물어보자.

> 오늘 내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 그 일은 어떤 하나의 경험으로 발전했는가?
> 나는 그 경험에서 무엇을 관찰했고, 성찰했으며, 통찰했는가?
> 그리고 이 경험은 누구와 어떤 가치를 나눌 수 있는가?

삼찰+밸업글쓰기는 이 네 질문에서 시작한다.

FAQ

Q1. 존 듀이가 말하는 '하나이 경험'이란 무엇인지 쉽게 정의해 주세요.

듀이에게 예술의 원천은 생명체와 환경이 맺는 일상적 상호작용이며, 예술의 경험적 형식은 저항과 리듬을 통과하여 하나의 통일된 종국에 이르는 ‘하나의 경험’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듀이에게 예술은 사람이 일상에서 세상과 부딪히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 경험이 어려움과 변화를 지나 하나의 의미 있는 완성에 이르면, 그것이 ‘하나의 경험’이며 예술의 기본 모습이다.

Q2. 모든 개인 경험이 글감이 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다만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변화와 의미를 남겼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사실·성찰·통찰이 연결될 때 개인 경험은 좋은 글감이 됩니다.

Q3. 하나의 경험은 반드시 즐거운 경험인가요?

아닙니다. 듀이에게 하나의 경험에는 저항과 갈등, 고통과 재구성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무의미하게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이해와 완성으로 나아가는가입니다.

Q. 삼찰+밸업글쓰기는 예술 글쓰기인가요?

문학적 예술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를 예술 글쓰기라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경험을 관찰·성찰·통찰로 조직하고, 공동의 가치로 확장하는 실천적 글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