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의 ‘하나의 경험’에서 다시 생각한 경험 글쓰기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일을 겪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말을 듣고, 길을 걷고, 책을 읽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은 금방 잊힙니다. 반면 어떤 경험은 오래 마음에 남아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사건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이 내 경험과 연결되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경험이 어떻게 한 편의 글이 되는지 생각하다가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말하는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경험이 ‘하나의 경험’은 아닙니다
듀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험은 시작되었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서로 관계없는 일들이 흩어진 채 지나갑니다.
반면 어떤 경험은 시작과 전개가 있고, 여러 사건과 감정이 서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의미 있는 완성에 이릅니다.
듀이는 이런 통일성과 완결성을 가진 경험을 ‘하나의 경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글쓰기를 생각했습니다.
글도 비슷합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차례대로 늘어놓는다고 반드시 한 편의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그 일이 왜 나에게 중요했는지 생각하고,
그 경험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하나의 꼭지글이 만들어집니다.
듀이의 ‘하나의 경험’과 삼찰밸업이 같은 이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듀이의 개념에서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의미로 조직되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사건과 경험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사건입니다.
“처음 AI를 사용해 보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글이 되기 어렵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70대에 처음 AI를 접했을 때 나는 새로운 도구 앞에서 다시 초보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사용하다 보니 잘못된 답도 있었고, 내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계속 사용하고 배우면서 어느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AI를 잘 사용하는 일이 단순히 명령어 몇 개를 아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AI를 사용한 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낯섦,
시행착오,
반복적인 사용,
질문의 변화,
그리고 AI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생각까지 연결하면
그것은 내게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한 꼭지의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꼭지글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한 꼭지글을 쓸 때 나는 경험을 모두 넣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습니다.
“이 경험에서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경험 속에는 여러 장면이 있습니다.
감정도 많고,
설명하고 싶은 배경도 많으며,
관련된 지식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 넣으면 글의 중심이 흐려집니다.
중요한 것은 경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앞의 AI 경험이라면 중심은
“AI 사용법을 배웠다.”
가 아니라
“AI를 배우면서 인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질문과 판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정해지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도 조금 분명해집니다.
글의 완성은 모든 것을 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경험을 하나의 의미로 묶는 데 있습니다.
삼찰밸업은 경험을 다시 읽게 합니다
나는 경험을 글로 옮길 때 삼찰밸업이라는 사유의 틀을 사용합니다.
삼찰밸업은 삼찰(관찰-성찰-통찰)을 통해 삶과 현실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읽고, 그 통찰을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필터로 해석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우는 글쓰기와 세상·사람·시대 읽기의 사유 틀입니다.
먼저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봅니다.
내 기억과 느낌을 사실과 구분하면서 경험의 장면을 붙잡습니다.
그다음 묻습니다.
왜 그 일이 내게 중요했는가?
내가 살아온 경험과 지식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했는가?
생각이 깊어지면 다시 묻습니다.
“이 경험의 표면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기에서 경험을 관통하는 본질이나 의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는 이 통찰을 어떻게 보는가?”
라고 묻습니다.
삼찰로 얻은 통찰을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우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Val-Up입니다.
실제 글에서는 이 과정을 관찰·성찰·통찰·Val-Up이라는 네 개의 소제목으로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됩니다.
경험에는 저항과 변화가 있습니다
듀이의 ‘하나의 경험’을 읽으면서 또 하나 주목한 것은 경험이 늘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저항이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고,
실패하기도 하며,
관계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생각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이 글을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나 갈등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일을 지나면서 내가 무엇을 보게 되었는가입니다.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거나,
처음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을 나중에는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변화가 경험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만 묻지 않고,
“그 일을 겪기 전의 나와 그 일을 겪은 뒤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라고 물으면 좋습니다.
이 질문은 사건을 경험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꼭지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으면 좋습니다
한 꼭지글에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하면 글이 무거워집니다.
건강도 이야기하고,
관계도 이야기하고,
리더십도 이야기하고,
신앙과 AI까지 한꺼번에 넣으면 중심을 잃기 쉽습니다.
나는 이제 한 꼭지에는 가능하면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중심 메시지를 두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나이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왜 같은 일을 겪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가?”
“AI가 글을 잘 쓰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왜 어떤 경험은 오래 기억되고 어떤 경험은 사라지는가?”
같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을 따라 경험을 다시 읽으면 불필요한 이야기는 빠지고 글의 중심은 또렷해집니다.
경험을 완성한다는 것
듀이는 ‘하나의 경험’에서 단순히 일이 끝나는 것과 경험이 완성되는 것을 구별합니다.
나는 이 차이가 글쓰기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끝났다고 경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이 끝나도 그 일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전 경험이 어느 날 새로운 질문을 만나면서 비로소 의미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지나간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경험을 현재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연결되고,
그 안에서 하나의 의미가 나타나며,
마지막에는 내가 그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그때 하나의 경험이 하나의 꼭지글이 됩니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요즘 이렇게 묻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일이 왜 내게 중요했는가?
그 경험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경험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리고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어떻게 보는가?”
한 꼭지의 글은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에서 나를 멈추게 한 하나의 경험이면 충분합니다.
그 경험을 다시 읽고 하나의 의미와 관점으로 완성하는 것.
나는 그것이 경험을 한 꼭지의 글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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