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로 읽는 삼찰밸업 글쓰기
“나는 특별한 경험이 없어서 쓸 것이 없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 산책길에서 본 풀 한 포기, 갑자기 내린 비, 오래된 친구와 나눈 대화, 뜻밖의 실패,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까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일을 겪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험은 금세 사라지고, 어떤 경험은 한 편의 글이 됩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까요?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의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을 읽으면서 저는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듀이는 예술을 삶과 분리된 특별한 세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환경과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경험이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조직되고 표현될 때 예술적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듀이의 경험론은 제가 말하는 삼찰밸업 글쓰기와 만납니다.
평범한 삶의 경험은 어떻게 가치 있는 한 편의 글이 되는가?
1. 글은 특별한 사건보다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듀이에게 경험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아닙니다.
인간이 환경과 만나고, 영향을 받고, 다시 반응하며 살아가는 전체 과정입니다.
따라서 예술의 원재료도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안에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글감을 찾으러 특별한 장소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산책하면서 바라본 물, 풀, 초록, 노을을 글로 풀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겪었던 교통사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 편의 글이 되었습니다.
차이는 사건의 크기가 아닙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았느냐입니다.
여기에서 삼찰밸업의 첫 번째 눈, 관찰이 시작됩니다.
관찰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
라고 묻는 것입니다.
느낌과 해석을 먼저 붙이기보다 사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2. 경험은 나와 연결될 때 의미가 됩니다
같은 비를 보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것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농사를 생각하며, 누군가는 여행 중 겪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 가치관과 만나는 순간 어떤 의미가 생깁니다.
이것이 성찰입니다.
관찰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를 묻는다면,
성찰은
“그 일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를 묻습니다.
삼찰밸업에서 성찰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관찰한 현실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연결하면서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보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경험은 이때부터 단순한 사건을 넘어 생각의 재료가 됩니다.
3. 나의 경험에서 ‘우리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듀이가 중요하게 다룬 개념 가운데 하나가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겪지만 그 모두가 오래 남는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시작과 과정, 긴장과 변화, 그리고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갖습니다.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기록하는 데서 끝나면 사건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질문하면 달라집니다.
“이 경험에서 내가 발견한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통찰입니다.
통찰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다른 사람과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본질과 의미를 발견하는 눈입니다.
나의 작은 이야기가 여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4. 경험은 그대로 옮긴다고 글이 되지 않습니다
듀이는 경험과 표현을 구분합니다.
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이 표현이 되려면 선택하고, 덜어내고, 연결하고, 다시 조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도 같습니다.
경험한 모든 것을 그대로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장면을 앞에 놓을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험에는 편집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는 경험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경험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하나의 메시지로 구조화하는 일입니다.
5. 통찰을 가치와 실천으로 연결하는 것이 Val-Up입니다
삼찰밸업은 통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합니다.
“내가 발견한 이 의미를 어떻게 더 나은 삶과 가치로 연결할 것인가?”
이것이 Val-Up입니다.
예를 들어 실패를 경험했다고 합시다.
“나는 실패했고 힘들었습니다.”
에서 끝나면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성찰하고 그 안에서
“회복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현실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 것이다.”
라는 의미를 발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통찰이 나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관계, 공동체의 실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결한다면, 그 경험은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됩니다.
바로 사적인 경험이 공적인 메시지로 확장되는 순간입니다.
6. 듀이의 "하나의 경험"(an Experence)과 삼찰밸업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다른가
듀이의 "하나의 경험"과 삼찰밸업은 같은 차원의 이론이 아닙니다.
듀이의 관심은 예술과 미적 경험의 철학에 있었고, 삼찰밸업은 제가 삶과 현실에서 본질과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정리한 관점이자 사고의 틀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중요한 접점이 있습니다.
듀이는 예술을 삶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삼찰밸업을 통해 글쓰기를 일상으로 되돌리고 싶습니다.
듀이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하면,
삶 → 경험 → 하나의 경험 →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찰밸업 글쓰기는 이를 이렇게 실천합니다.
경험 → 관찰 → 성찰 → 통찰 → Val-Up → 글
관찰은 사실을 보는 눈입니다.
성찰은 사실을 나의 지식과 경험에 연결하여 나를 돌아보는 눈입니다.
통찰은 그 경험 속에서 우리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본질과 의미를 발견하는 눈입니다.
Val-Up은 그 통찰을 더 나은 삶과 관계, 공동체와 사회의 가치와 실천으로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읽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경험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보고, 책을 읽고, 시대의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나 관찰하지 않으면 사실을 놓칩니다.
성찰하지 않으면 경험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통찰하지 않으면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Val-Up하지 않으면 발견한 의미가 삶의 가치와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찰밸업 글쓰기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평범한 경험 속에서 본질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글쓰기입니다.
듀이가 물었습니다.
삶의 경험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저는 그것을 글쓰기의 질문으로 다시 바꾸어 봅니다.
내가 오늘 겪은 평범한 경험은 어떻게 가치 있는 한 편의 글이 되는가?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관찰하고, 성찰하고, 통찰하고, Val-Up하는 것.
글은 삶 밖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글쓰기는 이미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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