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찰밸업 글쓰기 원리’를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아주 평범한 사실 하나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연현상입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은 중력과 지형의 영향을 받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작은 물줄기는 골짜기로 모이고, 개울과 강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사실도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다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라고 사실만 기록하면 관찰에 머뭅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삶과 현실의 본질을 읽고, 마지막에는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그것을 해석해 하나의 관점을 세울 때 비로소 ‘나의 글’이 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삼찰밸업 글쓰기입니다.
삼찰밸업이란 무엇인가
삼찰밸업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삼찰밸업은 삼찰(관찰-성찰-통찰)을 통해 삶과 현실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읽고, 그 통찰을 가치관과 세계관의 필터로 해석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우는 글쓰기와 세상·사람·시대 읽기의 사유 틀입니다.
여기에서 ‘삼찰’은 세 가지 눈을 뜻합니다.
관찰은 사실을 보는 눈입니다.
성찰은 그 사실과 나를 연결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눈입니다.
통찰은 표면적인 현상을 넘어 그 안의 본질과 의미를 근본적으로 읽는 눈입니다.
그리고 Val-Up은 그렇게 얻은 통찰을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하나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우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실을 보고 → 나를 돌아보고 → 본질을 읽고 →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 나만의 관점을 세우는 것.
이제 물의 흐름을 예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관찰: 먼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첫 번째는 관찰입니다.
관찰은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내 느낌과 해석을 사실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빗물은 중력과 지형의 영향을 받아 경사진 곳을 따라 낮은 쪽으로 흐릅니다.
여러 작은 물줄기가 만나 개울이 되기도 하고, 개울이 모여 더 큰 물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관찰입니다.
아직
“물처럼 겸손해야 한다.”
“낮아지는 삶이 좋은 삶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현상을 보면서 붙이는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관찰할 때는 이렇게 질문하면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무엇이 보이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내 느낌이나 판단을 빼고도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좋은 글은 멋있는 표현보다 정확하게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2. 성찰: 관찰한 사실을 나의 삶과 연결합니다
두 번째는 성찰입니다.
성찰은 관찰한 사실을 나의 경험, 지식, 기억, 가치관과 연결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높음과 낮음’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높은 곳을 지향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많이 인정받고,
더 성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높은 곳을 좋은 것으로 생각했을까?”
“낮아진다는 것은 반드시 뒤처지거나 실패하는 것일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이것이 성찰입니다.
자연현상이 인간의 성공이나 겸손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의 흐름은 자연현상이고, 인간의 겸손은 인문적·윤리적 개념입니다.
나는 다만 자연을 바라보다가 그 모습을 하나의 유비로 삼아 내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성찰에는 내 경험도 들어갑니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의 자리에서 생각하려 할 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관찰한 사실이 내 삶의 경험과 만나기 시작하면 글은 단순한 자연관찰을 넘어갑니다.
성찰하다가 지식이 부족하면 책이나 논문, 기사, 전문가의 설명, AI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많이 가져오는 것이 성찰은 아닙니다.
자료를 통해 사실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사실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통찰: 그 경험에서 본질을 근본적으로 읽습니다
세 번째는 통찰입니다.
통찰을 단순히 ‘다른 사람과 나눌 좋은 메시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부족합니다.
통찰은 관찰과 성찰을 거치면서 표면 아래에 있는 의미와 본질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물의 흐름을 보며 나는 ‘낮아짐’과 ‘겸손’을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들어가 질문합니다.
“겸손의 본질은 무엇일까?”
흔히 겸손을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겸손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없애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내가 틀릴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나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통찰에 이를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힘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겸손은 작아지는 능력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통찰입니다.
처음에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작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나의 경험과 만나고 질문이 깊어지면서 ‘겸손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의 문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통찰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교훈보다는 한 단계 깊어야 합니다.
“물처럼 낮아지자.”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까지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4. Val-Up: 통찰을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합니다
마지막은 Val-Up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Val-Up은 통찰을 곧바로 어떤 실천운동이나 공동체적 가치로 확장하는 단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삼찰을 통해 발견한 통찰을 내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의 필터로 다시 해석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우는 과정입니다.
앞에서 나는 이런 통찰에 도달했습니다.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힘이다.”
이제 나는 이 통찰을 내가 가진 세계관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했고 목회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과 삶을 바라볼 때 기독교적 세계관이 중요한 하나의 필터로 작용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낮아짐’은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리로 오신 사건입니다.
그 낮아짐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포기하거나 없애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세계관을 통해 앞의 통찰을 다시 해석하면 나는 이런 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낮아짐은 자기 가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치를 지닌 채 다른 사람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이다.
이것이 나의 Val-Up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같은 자연현상과 같은 통찰을 보면서도 다른 관점을 세울 수 있습니다.
생태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물의 흐름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존엄과 상호존중을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집착을 내려놓는 문제와 연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발견한 통찰을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그 결과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른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글쓴이의 독창성이 생깁니다.
삼찰밸업 글쓰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관찰
“물은 중력과 지형의 영향을 받아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흐른다.”
사실을 봅니다.
성찰
“나는 왜 높아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낮아지는 것을 실패처럼 생각했을까?”
그 사실을 내 경험과 삶에 연결합니다.
통찰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세계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힘이다.”
표면을 넘어 본질과 의미를 읽습니다.
Val-Up
“내가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볼 때 낮아짐은 자기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치를 지닌 채 다른 사람의 자리로 들어가 함께하는 힘이다.”
통찰을 가치관과 세계관의 필터로 해석하여 나만의 관점을 세웁니다.
이것이 삼찰밸업 글쓰기의 기본적인 사고 과정입니다.
같은 관찰에서도 다른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삼찰밸업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물을 보아도 사람마다 경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물을 보면서 겸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흐름과 변화를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통찰도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가치관과 세계관도 다릅니다.
그래서 최종 관점도 달라집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삼찰밸업은 모든 사람을 하나의 결론으로 데려가는 글쓰기 공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현실을 자세히 바라보고 깊이 생각한 뒤 각자가 자기 관점에 이르도록 돕는 사유의 틀입니다.
실제 글에서는 네 단계를 감추어도 됩니다
여기서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관찰 → 성찰 → 통찰 → Val-Up
순서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에세이나 인문 칼럼을 쓸 때마다
‘1. 관찰’
‘2. 성찰’
‘3. 통찰’
‘4. Val-Up’
이라고 소제목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반복하면 글이 딱딱해지고 모든 글이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 글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됩니다.
한 장면에서 시작하고,
그 장면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 경험이나 지식과 만나 생각이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마지막에는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
라는 자기 관점에 도달하면 됩니다.
삼찰밸업은 글의 겉모양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평범한 하루도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삼찰밸업 글쓰기는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가능한 글쓰기가 아닙니다.
빗물,
나무,
산책길,
한 권의 책,
친구와 나눈 말,
몸에서 느낀 작은 변화,
한 사람의 삶,
뉴스 한 장면,
AI를 사용하면서 생긴 질문도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을 자세히 보고,
그 사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에 있는 본질을 근본적으로 읽고,
그 통찰을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해 하나의 관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찰밸업 글쓰기의 마지막 질문은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먼저 묻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보는가?”
이 두 질문에 자기 언어로 답할 수 있을 때 평범한 경험은 비로소 ‘나의 글’이 됩니다.
삼찰밸업은 글을 잘 쓰기 위한 형식만이 아닙니다.
삶과 현실을 자세히 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의 본질을 읽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자기만의 관점을 세워 가는 사유의 방식입니다.
나는 바로 그 관점에서 글쓰기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찰+밸업 글쓰기 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 시대, 왜 '삼찰+밸업 글쓰기'인가? (0) | 2026.07.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