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서 예술』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 글쓰기의 출발점
나는 글쓰기를 가르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저는 글을 잘 못 씁니다.”
왜 못 쓰느냐고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글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아는 것도 많지 않고, 특별한 경험도 없고, 무엇보다 글로 쓸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정말 쓸 이야기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매일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글감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은 반드시 특별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만난 사람의 한마디, 길을 걸으며 본 풍경, 책에서 만난 한 문장, 뜻밖의 실수, 마음에 오래 남은 질문 하나도 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경험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에 달려있다.
듀이의 글을 읽다가 내 글쓰기를 생각했다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 예술』을 읽다가 내 눈길이 오래 머문 대목이 있었다.
듀이는 제2장에서 예술을 삶과 분리하여 특별한 세계에 놓으려 했던 생각을 비판한다. 예술을 마치 일상의 삶과는 다른 ‘천상의 것(Ethereal Things)’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듀이가 말하려는 중심에는 삶과 예술의 분리를 다시 이어 놓으려는 생각이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글쓰기를 생각했다.
물론 듀이가 여기에서 삼찰밸업이나 글쓰기 방법을 말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예술과 경험에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생각을 읽으며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도 어느 사이 삶과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닐까?
글을 쓰려면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하고,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문장을 아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삶을 글쓰기와 분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무슨 글이 되겠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글쓰기를 다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목회하고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은퇴한 뒤에는 이전에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공부도 시작했다. 온라인 세상을 배우고, 전자책을 만들고, AI를 배우고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내게 글이 된 것은 거창한 사건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만나 나눈 대화도 글이 되었고, 책을 읽다가 생긴 질문도 글이 되었다. 산책하면서 바라본 자연도 글이 되었고, 잘못 판단했던 경험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에게 글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글감이 될 일상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의 첫걸음을 특별한 영감에서 찾지 않는다.
먼저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의 현실을 본다.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이 마음에 걸렸는지, 왜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는지를 살펴본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관찰이다.
관찰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해 보면 쉽지만도 않다.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일상이 글이 되는 데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편의 글이 생기는 하루가 된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질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보았는가?
왜 그것이 내 마음에 남았는가?
그 일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안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어떤 본질이 있는가?
이런 질문이 시작되면 평범했던 경험이 생각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나의 지식과 경험에 연결해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의미와 본질을 찾아가다 보면 하나의 관점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내가 지금 말하는 삼찰밸업 글쓰기와 연결된다.
삼찰밸업은 관찰·성찰·통찰이라는 순서를 글의 겉모양에 맞춰 쓰는 공식이 아니다.
실제 글에서는 그런 소제목이 없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삶과 현실을 자세히 보고, 생각하고, 그 안의 본질을 읽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통찰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하나의 관점으로 세운다.
그것이 글이 된다.
글쓰기는 삶 밖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듀이는 예술을 다시 삶의 자리에서 보려고 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읽으면서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를 너무 특별한 사람들의 세계에만 두지 말아야 한다.
글은 삶 밖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가 살아온 하루의 삶에 있다.
오늘 만난 사람에게 있을 수 있고, 읽던 책의 한 문장 속에 있을 수 있다. 실패한 일이나 마음에 남은 질문 속에도 있다.
다만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자세히 보고, 왜 그런지 묻고, 내 삶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글쓰기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저는 특별한 경험도 없는데 무엇을 써야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먼저 특별한 이야기를 찾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를 다시 한번 보십시오.
글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일상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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