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의 『경험으로서 예술』을 읽으며
제가 속한 인문학 독서모임에서 9월에 함께 읽을 책은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 예술』입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서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듀이는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생명체(The Live Creature)’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예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삶에서 시작할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서 듀이가 말하려는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은 원래 삶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면 먼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떠올립니다.
값비싼 그림, 유명한 조각, 특별한 공연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은 일상생활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만들고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는 무엇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듀이는 바로 이 ‘분리’를 문제 삼았습니다.
예술은 원래 인간의 삶과 떨어져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고, 부딪치고, 만들고, 표현하는 경험 속에서 예술이 생겨났는데 어느 순간 예술이 삶에서 떨어져 나와 특별한 대상처럼 다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듀이가 박물관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박물관은 작품을 보존하고 보여 줍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작품만 떼어 놓고 그것이 태어난 삶과 경험을 잊어버리는 태도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생각했습니다.
글쓰기도 너무 특별한 일이 된 것은 아닐까
저는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쓸 이야기가 없습니다.”
“글을 잘 못 씁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저는 가끔 묻습니다.
“정말 이야기가 없습니까?”
하루를 살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납니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가 오래 남는 문장을 만납니다.
길을 걷다가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기쁜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들을 대부분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삶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듀이가 예술을 삶으로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면, 저는 글쓰기도 다시 일상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보니 내 글도 대부분 삶에서 나왔다
저 자신의 글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40년 가까이 목회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글이 되었습니다.
은퇴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도 글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을 배우고, 전자책을 만들고, AI를 배우면서 경험한 일도 글이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를 겪었던 하루도 글이 되었고, 산책길에서 바라본 자연도 글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글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도 많습니다.
지나고 다시 바라보니 그 안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더 분명하게 생각합니다.
글은 삶 밖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가 살아온 삶 속에 있습니다.
다만 그냥 지나간 경험과 글이 된 경험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경험했다고 모두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듀이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같은 경험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경험 가운데 시작과 과정이 이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를 이루는 경험을 특별히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개념도 제게는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흩어져 사라집니다.
반면 어떤 일은 자꾸 생각납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일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경험은 달라집니다.
그 일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내가 살아온 경험과 연결하게 되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글쓰기도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글쓰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경험을 다시 보고, 생각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듀이를 읽으며 삼찰밸업을 다시 생각하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말해 온 삼찰밸업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삼찰밸업이 듀이의 이론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듀이가 삼찰밸업 글쓰기를 말한 것도 아닙니다.
둘을 같은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만나는 지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듀이가 삶과 경험을 예술의 근원에서 다시 바라보았다면, 저 역시 글의 출발점을 삶과 현실에서 찾습니다.
내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고,
그 일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그 안에서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읽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통찰을 내가 가지고 살아온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하나의 관점이 생깁니다.
저에게 삼찰밸업은 바로 그런 사유의 과정입니다.
글을 네 칸으로 나누어 관찰·성찰·통찰·Val-Up 순서대로 쓰는 공식이 아닙니다.
삶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깊이 읽어 자기만의 관점에 이르는 생각의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AI가 글을 쓰는 시대라서 경험은 더 중요해졌다
요즘 저는 AI를 거의 매일 사용합니다.
AI는 글도 아주 잘 씁니다.
문장도 매끄럽고 자료도 빠르게 정리합니다.
그럴수록 저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람의 글은 무엇으로 달라질까?
AI도 그럴듯한 경험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실제로 살아본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도 없고, 실패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없습니다.
70년을 살아보지도 않았고, 목회를 해보지도 않았으며, 은퇴 후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시행착오를 겪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오히려 ‘내가 실제로 무엇을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는 문장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삶까지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도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박물관을 넘어 삶으로, 삶을 넘어 글로
듀이를 읽고 나서 제 마음에 남은 것은 어려운 미학 이론보다 한 가지였습니다.
예술을 삶에서 떼어 놓지 말라는 것.
저는 그것을 글쓰기에도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글쓰기도 삶에서 떼어 놓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다니기 전에 내가 살아온 일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실패하고, 배우고, 늙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글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저절로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보아야 합니다.
질문해야 합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한 본질을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범했던 경험 하나가 나만의 관점이 담긴 글로 바뀔 수 있습니다.
듀이는 예술을 박물관의 높은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특별한 사람들의 자리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되돌려 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술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글도 삶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그 삶은 비로소 나의 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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