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사람·책·자연 읽기

글감은 오늘 하루 안에 있다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8. 1.

평범한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때 글이 시작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특별한 경험이 없어서 쓸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묻고 싶습니다.

 

정말 쓸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 하루를 너무 빨리 지나온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처음부터 일상이 글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려면 무엇인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남들이 듣고 놀랄 만한 사건이나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의 상당수는 아주 평범한 일에서 시작됩니다.

 

산책하다 본 풀 한 포기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바라본 물에서 시작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가 글이 될 때도 있고, 책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생각이 멈추면서 글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뉴스를 보다가 생긴 질문도 글감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그냥 지나쳤느냐, 아니면 한 번 더 바라보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글감은 찾는 것보다 발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글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하면 먼저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쓰지?”

이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먼저 내가 오늘 무엇을 보았는지를 돌아봅니다.

 

오늘 누구를 만났는가.

무슨 말을 들었는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는가.

무엇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는가.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에서 생각이 오래 머물렀는가.

이렇게 돌아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하루에도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글감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이미 지나간 하루 속에서 발견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글은 다르게 나옵니다

한동안 나는 산책하면서 자연을 많이 바라보았습니다.

풀도 보고, 물도 보고, 나무도 보고, 저녁노을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물을 보고 같은 풀을 보는데 왜 모든 사람이 같은 글을 쓰지는 않을까?

답은 대상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보는 사람에게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이 다릅니다.

아는 것도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아도 떠올리는 생각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 비는 불편함일 수 있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기다리던 반가움일 수 있습니다.

같은 노을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하루의 끝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글감은 밖에 있지만 글은 결국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통과해서 나옵니다.

나는 이 점이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것을 한 번 낯설게 보아야 합니다

매일 보는 것은 오히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집 앞의 나무도 매일 보면 그냥 나무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의 말도 익숙하면 흘려듣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걸음을 멈추고 다시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왜 저럴까?”

“전에는 저 모습이 있었나?”

“왜 이 말이 오늘은 마음에 남을까?”

 

질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는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글은 보는 데서 시작하지만, 질문이 생길 때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단순한 장면이 내 경험과 연결됩니다.

 

예전에 겪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읽었던 책의 내용이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듀이를 읽으며 내 생각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 예술』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이 내게 들어왔습니다.

듀이는 예술을 삶과 분리된 특별한 세계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환경과 만나고 경험하는 일상 속에서 예술의 뿌리를 찾았습니다.

나는 듀이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글쓰기 방법을 배웠다기보다, 그동안 내가 해 오던 생각을 다시 확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삶과 떨어진 글은 없다는 것.

물론 듀이가 삼찰밸업 글쓰기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의 경험을 중요하게 본 그의 생각은 내가 글감을 바라보는 방식과 만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특별한 장소부터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부터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작은 일이 글이 되려면 그냥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적으면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산책을 했다.”

“길에서 꽃을 보았다.”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서 끝나면 하루의 기록입니다.

글이 조금 더 깊어지려면 한 번 더 물어야 합니다.

왜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가?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왔는가?

나는 그 일을 왜 이렇게 보고 있는가?

그 안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무엇을 발견했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일이 조금씩 큰 이야기로 바뀝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굳이 이것을 글 속에서 ‘관찰-성찰-통찰-Val-Up’이라는 순서로 나누어 보여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표가 아닙니다.

 

삶을 자세히 보고, 그것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본질을 읽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글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삼찰밸업 글쓰기입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AI가 글을 잘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도 AI를 사용합니다.

 

자료를 정리하고, 내가 쓴 글을 검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AI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은 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AI는 산책길을 실제로 걷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났던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내가 들었던 말을 그 자리에서 듣지 않았습니다.

40년 가까운 목회의 시간을 살아 보지도 않았고, 은퇴 이후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글쓰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화려한 문장을 만드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살아왔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것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에게 글쓰기는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을 조금 더 자세히 살아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람의 말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책의 한 문장을 그냥 넘기지 않고,

걸으면서 보았던 장면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그 질문을 붙잡고 생각하다 보면 때로 한 편의 글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내게

“글감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만난 사람,

오늘 들었던 말,

오늘 읽었던 한 문장,

오늘 마음에 오래 남았던 작은 장면부터 다시 보십시오.

 

글감은 특별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늘 하루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