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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찰+밸업 글쓰기 사례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다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8. 12.

정세훈 시인의 삶과 나의 오랜 두통에서 생각한 사회의 중심

 

오늘 저녁에는 사람책(휴먼라이브러리) 프로젝트 제7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발제자는 정세훈 시인이었습니다.

 

정세훈 시인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날 발제에 따르면, 그는 정규교육으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까지만 마쳤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열일곱 살 무렵 서울로 올라가 소년공이 되었습니다. 이후 20여 년간 여러 소규모 공장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떠났다고 해서 배움까지 중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갔고,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 작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책방에 가면 숨통이 트이고 살 것 같았다는 그의 회고에서,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문학을 향한 꿈을 지켜온 한 사람의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세훈 시인은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1990년 《창작과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첫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을 비롯해 《부평4공단 여공》, 《몸의 중심》, 《고요한 노동》 등 다수의 시집과 동시집, 동화와 산문집을 펴냈습니다. 현재는 충남 홍성의 노동문학관 관장으로서 노동문학 자료와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고난은 어떻게 시가 되었는가

오늘 발제의 제목은 ‘긍정적 삶과 창조, 그리고 사랑’이었습니다.

시인님은 사람마다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며, 자신은 삶에서 만난 수많은 고난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삶이란 고난을 무조건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거나 현실을 좋게만 해석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였습니다.

 

공장생활은 그의 몸을 심각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소규모 에나멜 공장을 비롯한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공약품과 석면 등에 노출됐고, 스물아홉 살 무렵에는 온몸에 발진이 생기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됐습니다. 공개된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증상이 진폐증의 전조였으며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한 석면이 원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날 발제에서 그는 붕대로 몸을 감싸고 다시 공장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병이 악화되면 잠시 쉬고, 조금 나아지면 다시 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서른아홉 살 무렵에야 공장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시를 놓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얻은 파지에 떠오르는 시를 썼고, 여러 잡지에 작품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의 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노동자의 삶과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증언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상처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시로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바라보며 섬기는 삶으로 확장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긍정은 고난을 무조건 좋게 해석하는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에 무너지지 않고, 그것을 창조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였습니다.

나에게도 몸의 중심은 언제나 아픈 곳이었다

정세훈 시인의 대표작 〈몸의 중심〉은 몸의 중심을 생각하는 뇌나 숨 쉬는 폐, 피가 뛰는 심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아픈 곳’을 몸의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온몸의 관심과 움직임이 가장 아픈 곳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가 내게 깊이 다가온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나도 거의 30년 동안 만성두통을 앓았습니다. 두통이 심한 날에는 네다섯 시간씩 통증이 이어졌고, 그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두통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즘은 한 달 넘게 두통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정말 사는 맛이 납니다.

 

두통이 생기면 머리만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흐려지고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으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통증이 지나가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몸의 다른 부분이 아무리 건강해도 머리가 아프면 하루의 모든 감각과 생각이 통증이 있는 곳으로 모였습니다.

 

그때 내 몸의 중심은 해부학적으로 정해진 특정 장기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감각과 생각을 끌어당기며 삶의 질서까지 바꾸어 놓는 아픈 곳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는 시인의 말은 단순한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오랜 세월 내 몸으로 확인해 온 사실처럼 다가왔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중심은 어디인가

나는 시인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몸의 중심〉에서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며, 사회의 중심도 가장 아픈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장 아픈 곳은 시대마다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이 시대에 사회적으로 가장 아픈 곳은 어디입니까?”

 

시인님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를 포함할 수 있지만, 노동자도 노동자 나름이라고 답했습니다. 일부 노동자 집단은 이미 상당한 조직력과 영향력을 갖게 된 반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각양각색의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씀했습니다. 나 역시 그 답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실제로 정세훈 시인은 2017년 인터뷰에서도 대기업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계층화를 경계했습니다. 그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보다 더 열악한 중소기업·하청·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운동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힘없는 타인과 공공을 위한 헌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열악한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아픈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고통의 위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노동자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서도 대기업과 영세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크게 다릅니다. 따라서 ‘노동자’라는 집단 명칭만으로 누가 더 약하고 아픈 사람인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범죄와 재난의 피해자, 중증질환자와 돌봄 가족, 장애인, 고립된 노인, 빈곤층,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가정폭력과 학대 피해자 등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회의 중심을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고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은 크지만 그것을 말하고 해결할 힘은 가장 적은 곳, 피해를 입었지만 제도에 접근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곳, 바로 그곳이 이 시대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아픈 곳을 중심에 두는 나라

몸은 가장 아픈 곳을 외면한 채 건강할 수 없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정책은 목소리가 크고 조직력이 강한 집단의 요구에만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하고 어렵고 힘없는 사람을 찾아 그들의 현실을 복지·의료·사법·노동·돌봄 정책에 우선 반영해야 합니다.

 

여기서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특정한 집단을 언제나 무조건 옳다고 편드는 일이 아닙니다. 누가 실제 피해를 입었는지,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스스로 말하고 대응할 능력과 구제수단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피는 일입니다. 집단의 이름보다 현실의 고통과 취약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정세훈 시인의 삶과 〈몸의 중심〉은 내게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몸은 가장 아픈 곳을 살리기 위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정치인과 정책입안자도 시대마다 달라지는 사회의 아픈 곳을 세심하게 찾아야 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조직력이 강한 집단보다 고통이 크면서도 스스로 말하거나 구제받을 힘이 없는 사람의 현실을 먼저 듣고, 그것을 정책의 우선순위와 예산에 반영해야 합니다.

 

누가 가장 뒤처져 있는지 찾아내고 그들을 가장 먼저 정책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것이 정치인과 정책입안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가장 뒤처지고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유엔의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 원칙과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가장 아픈 곳을 중심에 두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더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출처

  1. 충청남도·홍주신문, 「긴 암흑에서 길어 올린 글자, 시(詩)가 되다」
    정세훈 시인의 소년공 생활, 학업 중단, 청계천 헌책방 독서, 에나멜 공장 근무, 석면 노출과 질병, 파지에 시를 쓴 과정 등을 확인했습니다.
  2. 교보문고, 정세훈 작가 소개
    1955년 충남 홍성 출생, 17세부터 약 20년간 이어진 공장노동, 문단 활동 시기, 주요 저서와 노동문학관 활동을 확인했습니다.
  3. 아이굿뉴스, 「가장 아픈 곳, 그곳으로 몸이 움직인다!」
    〈몸의 중심〉의 의미와 노동자의 계층화, 대기업 노조 중심 노동운동에 대한 정세훈 시인의 견해를 확인했습니다.
  4. 뉴시스, 「정세훈 시인 ‘홍성에 국내 첫 노동문학관 25일 개관’」
    홍성 노동문학관의 설립과 정세훈 시인의 건립 활동을 확인했습니다.
  5. 예스24, 《고요한 노동》 도서 소개
    《고요한 노동》의 출간 정보와 작품의 주제적 성격을 확인했습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그룹, ‘Leave No One Behind’
빈곤·차별·배제·불평등과 취약성을 줄이고, 가장 뒤처진 사람을 우선해야 한다는 정책 원칙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