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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찰+밸업 글쓰기 사례

고야와 유시민에게서 본 메타인지력

by 밸업가이드 김종태 2026. 8. 1.

자기 진영을 넘어 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녁 산책길에 들은 유시민 작가의 고야 이야기에서 자기 진영을 넘어 보는 그들의 메타인지력을 보았다. 건강한 이성은 어떻게 편견과 진영논리를 넘어 정직한 비평으로 이어지는가?

 

저녁 식사 후 산책길에 나섰다. 걸으면서 우연히 유튜브 「탁현민의 더뷰티플―유시민 작가와 함께하는 유럽 기행 3탄」을 들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도시·역사·예술을 풀어가던 이야기 중에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등장했다.

유시민 작가는 유럽의 여러 화가 중 고야의 그림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문장을 소개했다.

 

“이성이 눈을 감으면 괴물이 눈을 뜬다.”

고야의 판화에 새겨진 원문은 “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 정확히 번역하면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야와 유시민을 연결하는 한 지점이 떠올랐다. 동시에 유시민에 대해 내가 품고 있던 선입견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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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 Nugget

자기 진영을 넘어 보는 힘은 깨어 있는 건강한 이성에서 나온다. 건강한 이성은 자기편을 버리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편의 논리와 그것을 믿는 자기 자신까지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능력이다.

1. 권력 안에서 권력을 바라본 고야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였으며 1799년 수석 궁정화가가 되었다. 왕과 왕비,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권력 안에서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누렸다. 그는 왕정 밖에서 권력과 싸운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권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만 머물지도 않았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에서는 왕실의 화려한 의복과 지위를 충실히 표현하면서도 인물들의 외모와 표정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않았다.

 

1799년 발표한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에서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무지·미신·잘못된 교육과 위선을 풍자했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 이후에는 《1808년 5월 3일》과 《전쟁의 참화》를 통해 전쟁과 권력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 증언했다.

고야는 ‘권력 안의 화가’이면서 ‘권력을 관찰하는 비판자’였다. 체제 안에서 일하고 생존하면서도 그 체제와 인간의 어둠을 그림으로 남겼다.

2. 세상을 보는 자신까지 바라보다

《로스 카프리초스》 제43번 판화에는 한 남자가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그 뒤로 올빼미와 박쥐를 닮은 기괴한 존재들이 몰려든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이 인물을 잠든 예술가로 설명한다.

고야는 “저들이 이성을 잃었다”고 세상만 비판하지 않았다. 잠든 예술가를 그림 중심에 놓음으로써 괴물은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나와 우리 안에서도 깨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대 심리학의 개념으로 해석하면 여기에서 메타인지적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메타인지는 자기 생각과 판단 과정을 인식하고 점검·조절하는 능력이다.

고야의 위대함은 권력을 바라본 데만 있지 않다. 권력을 바라보는 자기 위치와 인간 이성의 한계까지 함께 보았다는 데 있다.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1799년. 《로스 카프리초스》 제43번.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3. 유시민의 ‘필패론’을 다시 보다

최근 유시민 작가는 이재명 대통령이 선택한 정치적 방향이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비판했고,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어물전의 생선비린내" 등의 용어로 강하게 비판했다. 개헌·정계개편·권력구조 개편, 검찰개혁 지연과 중도·보수 외연 확장 방식을 문제 삼은 발언이었다.

 

여권 내부에서는 필요한 경고라는 평가와 근거가 부족한 저주라는 비판이 맞섰다. 유시민은 이후 자신의 말이 “이렇게 계속 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조건부 비평이었다고 설명했다. 비평의 맥락을 제외하고 일부 표현만 떼어 비판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게 싫으면 비평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했다.

그의 판단이 옳은지는 앞으로 사실과 정치적 결과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발언의 진정한 동기를 내가 단정할 수도 없다. 나 역시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와 가까운 진영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판단을 공개한 행위에서 나는 비평가의 독립성과 정직을 보았다.

4. 무너진 선입견에서 발견한 정직

나는 이전에 유시민의 책을 읽고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의 정치적 발언이나 이미지 때문인지 막연한 비호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발언과 이날 고야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가 옳기 때문에 선입견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진영과 우호적인 관계보다 작가와 비평가의 역할을 앞세우려는 태도에서 정직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타인지와 정직은 같은 것이 아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위치와 판단을 점검하는 능력이고, 정직은 보고 판단한 것을 관계의 유불리에 따라 왜곡하지 않는 태도이다. 여기에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말하는 용기가 더해져야 비평은 타당성을 가진다.

이성은 근원이고, 메타인지는 작동 방식이며, 정직은 태도이고, 실행은 용기다.

5. 고야와 유시민은 어디까지 닮았는가

두 사람을 같은 무게로 비교할 수는 없다. 고야는 절대왕정과 종교재판의 시대에 그림과 상징으로 말했고, 유시민은 민주사회에서 말과 글로 현실정치를 비평한다. 고야의 작품은 이미 역사적 평가를 거쳤지만, 유시민의 최근 판단은 아직 검증 중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고야는 왕실 안에서 왕실과 시대의 어둠을 보았고, 유시민은 진보 진영의 영향력 있는 논객이면서 자신과 가까운 권력의 문제를 비판했다.

내가 두 사람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기 진영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진영을 넘어 보는 메타인지력이다.

6. 건강한 이성은 무엇을 보게 하는가

건강한 이성은 단순히 논리적으로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사실과 근거 앞에서 판단을 수정하며, 관계와 진영의 압력 속에서도 독립적인 판단을 지키는 힘이다.

 

개인이 이성을 잃으면 편견이 괴물이 되고, 집단이 이성을 잃으면 진영논리가 괴물이 된다.

나는 상대편의 잘못만 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편의 문제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까지 함께 볼 수 있는가?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그러나 건강한 이성이 깨어 있으면 상대편의 괴물뿐 아니라 내 편과 내 안의 괴물까지 볼 수 있다.

 

FAQ

 

Q1. 고야가 실제로 “이성이 눈을 감으면 괴물이 눈을 뜬다”고 말했나?

 

원문은 “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이며,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는 뜻이다. “이성이 눈을 감으면 괴물이 눈을 뜬다”는 원문의 의미를 살린 의역이다.

 

Q2. 메타인지가 높으면 반드시 정직한가?

 

그렇지 않다. 메타인지는 자기 생각을 점검하는 인지 능력이고, 정직은 판단을 왜곡하지 않는 윤리적 태도다. 메타인지가 정직과 용기로 이어질 때 자기 진영을 넘어 보는 비평이 가능해진다.

 

참고 자료 및 관련 작품

  1. 「탁현민의 더뷰티플―유시민 작가와 함께하는 유럽 기행 3탄」
  2.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프라도미술관
  3.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4.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프라도미술관
  5. 고야, 《1808년 5월 3일》―프라도미술관
  6. 「프란시스코 고야와 스페인 계몽주의」―메트로폴리탄미술관
  7. 유시민 ‘필패론’ 관련 연합뉴스 보도
  8. 유시민 ‘필패론’의 취지와 맥락―MBC 뉴스하이킥
  9. John H. Flavell, 「Metacognition and Cognitive Monitoring」